소가야

소가야(小加耶)는 고성(固城)을 중심으로 남해안 일대에 자리한 가야이다. 삼한시기의 고성지역에는 중국의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보이는 "변진고자미동국(弁辰古資彌凍國)"이 있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삼국사기"에는 "고자국(古自國)" 또는 "고사포국(古史浦國)"으로, "일본서기"에는 "구차(久嗟)", "고차(古嵯)" 등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모두 "고자국"에 대한 표현상의 차이이다.  
 
고성은 경상남도의 남부해안에 위치한 지역으로 동으로는 마산, 서로는 사천, 북으로는 함안, 남으로는 바다와 접해 있어 해로와 육로를 이어주는 교역망 확보에 유리한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또한 고성읍 주위에는 바다와 인접하면서도 비교적 넓은 농경지인 고성평야가 위치한다. 고자국은 이와 같은 고성지역의 지리적 이점을 이용한 해상교역을 통해 소가야로 성장, 발전하였다.

 "삼국사기" 물계자전(勿稽子傳)에는 3세기 무렵 고사포를 비롯한 남해안에 기반을 둔 포상8국(浦上八國)이 힘을 합쳐 아라국을 공격하였으나 실패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남해안의 해상교역권을 놓고 낙동강하류권역 세력과의 다툼이 있었음을 반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소가야는 크게 성장하지는 못하였지만 6세기 중엽까지도 여전히 유력한 가야 세력의 하나로 존재하고 있었음이 "일본서기"에 보인다.

연당리 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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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당리 토기들 소가야의 근거지인 고성지역에는 이곳을 중심지로 하는 하나의 토기분포권이 형성되어 있다. 이 지역의 표지적인 토기 형태로는 납작한 몸체에 긴네모꼴굽구멍을 가진 굽다리뚜껑접시와 아가리 끝이 수평을 이루며 퍼진 목항아리를 꼽을 수 있다. 이러한 형식의 토기는 5세기 중엽경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5세기 후반부터 6세기 전반까지 유행하다 6세기 중엽 이후 사라진다.
 
이 토기의 분포는 고성을 중심으로 남쪽으로는 거제, 북쪽으로는 거창과 남원, 동쪽으로는 창원, 서쪽으로는 하동에 걸친 넓은 범위이다. 이 분포법위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기별로 차이가 있다. 이러한 현상은 고령지역 토기의 확산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5세기 후반경에 넓게 퍼져 있던 고령지역 토기의 분포범위는 6세기 전반부터 시작된 고령지역 토기의 확산으로 상당히 축소되게 된다. 이 밖에 고성지역에서는 함안지역의 특징적인 토기가 보이지 않는 점이 특이하다. 이러한 토기의 분포와 시기에 따른 변화는 소가야의 정치적, 사회문화적 변화를 반영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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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연당리 고분군 
 
다른 가야의 중심지에 비해 고성지역은 조사가 활발하지 못해 소가야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특히 여러 가야지역에서 보이는 뚜렷한 지배계층의 고분군이 아직 조사되지 않아 소가야문화를 구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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