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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청자
순청자는 상감이나 다른 물질에 의한 장식무늬가 들어가지 않는 청자를 말합니다.
음각,양각,투각기법으로 장식된 청자들과 동,식물 등을 모방해 만든 상형청자등도 여기에 속합니다. 이러한 순청자는 고려시대초기부터 점차로 세련되어 12세기초에는 그 정점에 이르며 12세기 중엽이후 상감청자가 만들어지는 때에도 꾸준히 제작되었습니다. 그 절정기인 12세기 초 중기의 순청자는 바탕흙이 매우 정선되었으며 유약속에 작은 기포가 가득차 있어 반투명하며 이러한 유약과 바탕흙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표면이 비취색이라고도 일컫는 청록색을 띠며 유약에는 빙렬이 없습니다. 또 경직된 윤곽선을 지닌 중국 고동기의 영향에서 벗어나 점차 부드러운 선을 띠는 단정한 고려적인 형태를 나타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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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감청자

청자에 상감기법으로 문양을 나타낸 것을 상감청자라 합니다.
상감청자란 바탕흙으로 그릇모양을 만들고 그 표면에 나타내고자 하는 문양이나 글자 등을 파낸 뒤 그 패인 홈을 회색의 청자 바탕흙 또는 다른 백토나 자토로 메우고 표면을 고른후 청자 유약을 입혀 구운 청자를 말합니다. 이렇게 해서 구워내면 회색을 바탕으로 흑,백의문양이 선명하게 돋보이게 됩니다. 
상감기법에는 정상감과 역상감의 두가지가 있습니다.
정상감은 앞에 이야기 한방법으로 상감무늬를 나타낸것이며 역상감은 이와반대로 나타내고자 하는 문양이외의여백을 파고 백토나 자토로 상감하는 방법입니다. 상감기법은 청공기에 상감으로 문양을 나타낸것에서 비롯되었지만 이처럼 도자기에 상감한 것은 우리나라 고려시대에 처음 나타난 것입니다.고려시대 청자에 상감으로 문양을 나타내기 시작한것은 대략12세기 전반으로 추정되며 가장 세련미를 보인 시기는 12세기 중엽무렵입니다. 특히 1159년에 죽은 문공유의 무덤에서 출토된 상감청자는 정교한 기법과 짜임새 있는 문양의 구도 맑고 투명한 유약등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절정기 상감청자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감청자는 1231년 몽고 침입이후 서서히 퇴락하여 문양이 도식화 되어 버립니다. 고려말에는 보다 간편하게 무늬를 표현하기 위하여 무늬를 찍어내는 인화기법까지 생겨납니다. 상감청자의 인화기법은 조선시대 분청사기로 이어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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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화청자

고려청자의 일종으로 청자 바탕흙으로 그릇을 빚고 표면에 흑색의 산화철을 주성분으로 한 안료로 그림을 그립니다. 그리고 그위에 청자 유약을 입혀 구워낸 자기를 말합니다. 환원염 번조의 고려청자와 는 달리 대개 산화염 번조였기 때문에 일부의 예를 제외하고는 황갈색인 경우가 많습니다. 또 대개의 경우 유약이 얇고 바탕흙속에 모래 등의 불순물이 섞인 것이 많아 표면이 매끄럽지 못합니다.

철화청자는 중국 송, 원나라의 자주요 계통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11세기 초에 만들어 지기시작합니다. 번조 수법이나 기형 문양에서 그 영향을 크게 벗어나지못한상태에서 고려말까지 계속됩니다. 초기의 청화청자는 조그만 접시나 바래기 등의 안쪽면 사방에 새로선을 긋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 성기(盛期)에는 병종류에 당초무늬를 주로 하여 모란 무늬 이형 초목무늬 새무늬 버들무늬 시명 등이 그려지며 말기에는 간단한 당초무늬가 그려집니다.  그릇모양은 매병과 광구장경병 주전자, 기름병 등이 많으며 발색이나 문양 등에도 전형적인 고려청자와는 다소 차이가 납니다. 드물게 중국의 매병모양이지만 무늬가 간결하고 필티가 활달하거나 아니면 중국적인 문양이면서도 소박한 필치와 구도에서 고려적인 특징이 엿보이는 것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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